엄마의 푸근한 가슴을 닮은 우유


가운데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바나나맛 우유 용기는 고향집 뒤뜰에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담아 묻은 장독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졌다. 배고프던 시절 조금이라도 많은 우유를 먹게 하려는 넉넉함도 함께 담겨 있다.


엄마를 따라 목욕탕을 다니던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한참 전일 것이다. 물론 목욕탕 내부의 풍경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는 나를 뜨거운 탕 속에 풍덩 집어넣고는 인내력 테스트를 했다. 뜨거웠지만 엄마가 나오라고 할 때까지 견뎌야했다. 뜨거운 물에 몸이 퉁퉁 불어 때 밀기 딱 좋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탕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엄마는 잘 불은 내 팔을 잡고 살갗이 다 벗겨지도록 빡빡 때를 밀곤 했다.
아프다고 소리도 치고 울기도 하면서 때를 밀기 싫어 엄마와 실랑이를 벌였던 기억도 난다. 어릴 적 목욕탕에 대한 기억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 힘들었던 기억들을 모두 잊게 해주는 한 순간이 있었다. 바로 목욕 후 마시는 시원한 우유 한 잔. 흰 우유는 사절. 초코우유, 딸기우유, 바나나우유, 그 중에서도 으뜸은 역시 바나나우유였다.


시대상 고스란히 담은 40년 장수 브랜드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장수 브랜드다. 1974년 처음 등장했으니 내년이면 마흔 살. 수많은 장수 브랜드들 중에서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어느 브랜드보다 상품 속에 당시의 시대상이 잘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나나맛 우유에 ‘톡’하고 빨대를 꽂는다. 입술에 힘을 주어 우유를 ‘쭉’ 빨아들이니 식도를 타고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가는 느낌이 든다. 바나나맛 우유를 마시며 과거를 회상한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바나나는 가장 비싸고 귀한 과일 중 하나였다. 수입이 자유화되지 않았던 시절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 열대과일을 맛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나나는 병문안을 가거나 귀한 손님이 찾아올 때 내놓는 특별한 과일이었다.
1970년대는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은 시절이기도 했다. 정부는 국민들의 영양 균형을 위해 낙농업을 육성하면서 특히 성장기 아이들이 특히 우유를 많이 마실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체질상 흰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생각만큼 우유 소비가 늘지 않았다.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이라도 잘 받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 흰 우유를 잘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좀 더 쉽고 맛있게 우유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고민 끝에 등장한 상품이 바로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였다.
바나나맛 우유는 등장과 함께 큰 인기를 끌었다. 맛도 맛이지만 그 전까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항아리 모양의 용기도 화제였다. 바나나맛 우유의 볼록한 용기는 고향집 뒤뜰에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담아 묻은 장독을 모티브로 해서 탄생했다.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던 시절, 떠나온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머니의 손맛에 대한 그리움은 도시에서 새 삶을 사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기사전문보기